확신할수록 얼마나 사야 하는가

한 줄: 비중은 확신의 크기가 아니다. 기회가 커 보여도 미리 정한 총한도 안에서 사고, 비중이 커질수록 출구는 더 분명히 정한다.

확신과 기회를 한쪽에 놓고 총한도와 출구를 다른 쪽에 놓은 저울

확신이 커도 총한도와 출구를 먼저 적는다.

확신과 비중은 같은 것이 아니다

좋은 종목을 찾고 가격도 감당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얼마를 살 것인가.

확신이 강할수록 많이 사고 싶어진다. 많이 공부했으니 더 확신한다. 남보다 잘 안다고 생각하면 비중도 커진다. 어느 순간 기업에 대한 확신이 내 판단에 대한 확신으로 바뀐다. 둘은 같은 것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기업도 미래는 모른다. 기술이 바뀌고, 경쟁자가 나타나고, 금리와 경기가 변한다. 기업은 그대로인데 시장이 지불하려는 가격이 달라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 내가 틀릴 수 있다.

확신은 마음속의 느낌이고, 비중은 계좌에 찍히는 숫자다. 느낌은 하루에도 몇 번씩 커졌다 작아졌다 하지만 숫자는 그대로 남는다. 그래서 비중은 느낌이 아니라 미리 정한 숫자로 다룬다. 잘 안다는 것과 앞일을 안다는 것도 다르다. 기업을 깊이 아는 사람도 다음 분기 주가는 모른다.

큰 기회와 살아남을 한도

비중에는 딜레마가 있다. 적게 실으면 틀렸을 때의 상처는 작지만 어렵게 찾은 자리에서도 얻는 것이 작다. 크게 실으면 맞았을 때의 보상은 커지지만 불확실성도 계좌에 함께 실린다.

큰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늘이 준 기회’라고 단정하고 몰아넣을 수는 없다. 그 단정 자체가 틀릴 수 있기 때문이다.

비중의 핵심은 확신의 크기 하나가 아니다. 종목의 질, 사이클의 위치, 가격,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시간과 손실을 함께 본다. 여러 조건이 겹치고 변화의 초입이라고 판단되면 평소보다 비중을 늘릴 수 있다. 그래도 사전에 정한 종목별·계좌별 총한도는 넘지 않는다. 심리만 앞서 있거나, 주도주라도 내가 견디지 못한다면 비중을 늘리지 않는다.

얼마를 실을지를 숫자로 따져 본 사람도 있다. 1956년 벨 연구소의 존 켈리가 내놓은 켈리 공식이다. 이길 확률과, 이겼을 때 얻는 것과 졌을 때 잃는 것의 비율을 넣으면 걸어야 할 몫이 나온다. 이길 확률이 60%이고 얻는 것과 잃는 것이 같다면 답은 20%다. 확률이 50%라면 답은 0이다. 확신이 아니라 승률과 손익비가 크기를 정한다.

문제는 주식에서는 그 확률을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는 데 있다. 승률을 조금만 높게 잡아도 공식은 훨씬 큰 몫을 내놓고, 지나치게 실으면 오히려 계좌가 줄어든다. 그래서 공식을 쓰는 사람들도 계산된 몫의 절반만 싣는 "하프 켈리"를 흔히 쓴다. 내 추정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숫자에 미리 넣어 두는 셈이다.

비중이 커질수록 반대 조건을 먼저 적는다

큰 비중에는 더 엄격한 반대 조건이 붙는다. 이것이 규칙이다.

무엇이 틀리면 나올 것인가.

어느 전제가 깨지면 비중을 줄일 것인가.

손실을 어디까지 감당할 것인가.

추가매수로 평균만 낮추고 있지는 않은가.

왜 손실 한도를 먼저 정해야 하는지는 간단한 셈으로도 보인다. 잃은 만큼 다시 벌면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손실본전까지 필요한 수익
-10%+11.1%
-20%+25%
-30%+42.9%
-50%+100%

손실이 깊어질수록 회복에 필요한 수익은 더 빨리 커진다. 큰 비중일수록 출구를 이르게 세워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기회를 크게 잡으려면 실패했을 때 살아남는 길을 먼저 정해 둔다. 정답 비율은 없다. 항상 분산도, 항상 집중도 규칙은 아니다. 다만 비중이 커질수록 손절과 축소의 기준은 더 분명하고 이르게 세운다.

오래된 격언도 둘로 갈린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은 분산을 권한다. 반대로 앤드루 카네기는 1885년 피츠버그의 커리 상업학교 학생들에게 "계란을 모두 한 바구니에 담고, 그 바구니를 지켜보라"고 말했다. 마크 트웨인도 1894년 소설 『바보 윌슨』에서 같은 말을 썼다.

어느 쪽이 옳은지보다 뒷말이 중요하다. 한 바구니에 담으려면 그 바구니를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 지켜볼 수 없다면 나눠 담는 편이 낫다.

공부는 미래를 확정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보다 조금 유리한 조건을 찾으려고 한다. 조건이 달라지면 판단도 다시 한다.

반대 조건은 살 때 적어 두어야 한다. 손실이 난 뒤에 정하면 기준이 손실에 맞춰 자꾸 뒤로 물러난다. 맑은 정신일 때 적은 몇 줄이 흔들릴 때의 나를 붙잡는다.

비중이 지나치면 마음도 달라진다. 평소라면 무시할 뉴스에 민감해지고 밤마다 가격을 확인한다. 그러면 기업을 보는 것이 아니라 불안을 달래려고 매매하게 된다. 그 지점이 이미 내 한도를 넘긴 자리다.

기회에는 비중을 실을 수 있어야 한다. 전제는 하나다. 내가 틀려도 다음 자리를 맞이할 수 있도록 살아남는 것.

FAQ

  • Q. 비중은 몇 퍼센트가 맞나요?
    A. 모든 사람과 종목에 맞는 하나의 비율은 없습니다. 먼저 감당할 총한도와 실패 조건을 정합니다.
  • Q. 확신하면 몰아넣어도 되나요?
    A. 아닙니다. 확신은 기업에 대한 판단이고, 비중은 내가 틀릴 가능성까지 반영한 결정입니다.
  • Q. 손절은 자존심을 버리는 일인가요?
    A. 아닙니다. 처음 산 이유와 전제가 깨졌는지 확인하고 계좌를 다음 기회로 이어 가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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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 면책: 이 글은 개인적인 투자 공부와 경험을 정리한 글이며,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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