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중성 — 탐욕과 공포로 갈라진 나 "대체 왜 이렇게 시장이 미쳐 날뛰는 거야?" 화면 속 붉고 푸른 숫자가 잔인하게 널뛰는 날이면, 투자자들은 가슴을 졸이며 시장의 극심한 변동성을 탓합니다. 하지만 이는 우리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이고 그 결과도 우리에 귀속됩니다. 모두가 똑같이 적정한 가격이라 믿는 고요한 시장에서는 거래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지금이 바닥이라며 탐욕스럽게 매수하고, 누군가는 지금이 끝이라며 공포에 질려 던질 때 비로소 시세와 거래량이 태어납니다. 주식판을 움직이는 거대한 폭풍은 외부에 존재하는 괴물이 아니라, 소음과 욕망에 흔들려 매수·매도 버튼을 누르는 우리 자신들의 합작품입니다.
답을 찾기 전에, 나는 제대로 질문하고 있는가. 주식의 답을 찾다가, 질문하는 법을 다시 생각하다 주식을 한 지 30년이 넘었다. 그동안 참 많이도 물었다. 왜 오르는가. 왜 떨어지는가. 지금 사야 하는가. 조금 더 기다려야 하는가. 기업 실적을 보고 차트를 보고 수급을 보고, 금리와 환율도 들여다봤다. 새로운 산업이 나타나면 또 공부했다. 그런데 오래 했다고 질문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요즘에는 다른 질문 하나가 자꾸 따라붙는다. 나는 지금 시장을 공부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보고 싶은 시장을 공부하고 있는가. 주식을 오래 공부하면 시장이 더 잘 보일까 처음에는 많이 알면 투자도 쉬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업을 더 공부하고 경제를 더 공부하면 실수를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공부는 필요하다. 문제는 지식이 늘어난다고 반드시 내가 객관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었다. 좋은 기업이라고 생각하면 좋은 자료가 더 눈에 들어온다. 이미 주식을 사고 나면 그 기업을 좋게 설명하는 이야기에 마음이 간다. 주가가 오르면 내 판단이 옳았던 것 같고, 떨어지면 시장이 아직 알아주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시장과 나를 구분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둘이 섞여 있었다. 그래서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다. 옛 성현들에게 오늘 주식시장을 물어본다면 뭐라고 할까. 철학자에게 주가를 묻는다는 것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묻는다면 기업 이름이나 오늘 주가보다 먼저 그것이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물어보지 않을까. 헤겔에게 묻는다면 지금 오르느냐 내리느냐보다 그 안에서 무엇이 충돌하고 무엇이 변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라고 하지 않을까. 장자에게 묻는다면 시장을 내 뜻대로 움직이게 하려는 나부터 한번 돌아보라고 하지 않을까. 물론 이분들이 주식투자를 가르쳤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그저 오래된 사람들의 생각을 잠시 빌려 내 질문을 다시 해보는 것이다. 철학에서 주가의 답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너무 쉽게 답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를 돌아보려는 것이다....
▲ 폭풍 속 등대 — 흔들리는 가격 속에서도 본질은 방향을 비춘다 주가가 변했다고 그 기업의 본질까지 변한 것인가. 시장은 수많은 힘이 맞물리는 복잡계다. 투자자의 미묘한 감정부터 금리와 전쟁, 기업의 실적과 돈의 흐름까지 서로 얽혀 가격을 만든다. 오늘의 가격에는 사실과 기대, 공포와 탐욕이 한꺼번에 섞여 있다. 그러니 가격이 크게 움직일수록 마음도 같이 출렁인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예측이 아니라 무엇이 변했고 무엇이 아직 변하지 않았는지를 가려 보는 일이다. 나도 가격이 오르면 좋은 기업처럼 보이고, 떨어지면 처음부터 잘못 산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느낌이 바뀌었다고 기업까지 같은 속도로 바뀐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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