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주가가 움직인 이유는 하나일까

이미지
주가를 움직이는 여러 조건은 서로 기대며 달라진다. (AI 제작 삽화) 한 줄 요약: 주가를 움직인 이유 하나에 매달리기보다, 돈과 기업과 사람의 기대가 만나는 조건을 함께 살핀다. 주가가 움직이면 나는 이유부터 찾았다. 금리 탓, 외국인 탓, 실적 탓. 이유 하나를 손에 쥐면 마음이 편했다. 그런데 그 이유 하나로 산 종목이 자주 나를 배신했다. 시세는 하나의 원인이 아니라, 여러 조건이 잠시 만나 일어난 결과다. 이번에는 정신 차린 내가 이유 하나에 매달리던 혼돈의 나를 돌아본다. 혼돈의 나, 이유 하나에 전부를 걸었다 본격적인 시작은 90년대 말에서 2000년 초의 닷컴 버블 때다. 인터넷과 닷컴이 어떤 세상을 만들지 나는 몰랐다. 오르는 판이니 사고팔면 전부 먹을 줄 알았다. 오르면 나도 사고, 내리면 이것 아닌가봐 팔았다. 호가창이 부르는 대로였다. 이유는 하나, 오르니까였다. 2015년에는 기술수출의 대명사였던 00약품이었다. 기술수출이 이어졌다. 나는 그 서사 하나만 보았다. 천정권에서 들어갔다. 기술수출이라는 원인은 그대로였다. 다른 조건이 달라져 있었다. 대중의 나들이 이미 자본을 모아 상승의 각도를 가파르게 만들어 놓았고, 기대는 이미 가격에 들어 있었다. 나는 인사이트도 부족했고 제때도 몰랐다. 원인은 있었는데 그 원인이 혼자 서지 않았다. 이것도 아닌가봐, 그래서 연기론을 만났다 감정에 휘둘리는 나를 벗어나고 싶었다. 처음에는 통제의 대상이라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의 이기론의 「이」를 찾으면 될 줄 알았다. 공부 끝에 시세는 매크로, 펀더멘탈, 센티멘탈의 합이라는 단순한 결론에 닿았다. 그래도 여전히 휘둘렸다. 이것도 아닌가봐. 연기론을 공부했다. 답은 간단했다. 무명이, 무지가 나를 흔든다는 것. 연기(緣起)는 모든 것은 조건에 의지하여 일어난다. 수많은 시세요소 중 하나가 바뀌면 그것이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무상하다. 만난 조건은 흩어진다. 블루베리가 먼저 가르쳐 주었다 2년째 농사를 짓는다. 동네 가게에서 ...

같은 호재인데 왜 주가는 다르게 움직일까

이미지
뉴스의 크기와 그 뉴스를 받아들일 시장의 조건을 함께 본다. (AI 제작 삽화) 한 줄 요약: 같은 호재도 가격에 들어간 기대와 시장의 조건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 뉴스가 무엇을 바꾸는지 먼저 본다. "같은 뉴스가 터져도, 이미 반영된 자리와 아직 반영되지 않은 자리가 가리키는 방향은 전혀 다르다." 공개된 정보에 시장이 반응하는 속도는 빠르다. 알고리즘 매매가 커지며 빨라진 반응 속도가 넓게 퍼지고 있다. 이제 사람이 뉴스의 시간차로 이익을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또 하나, 같은 뉴스에도 주가는 다르게 반응한다. 흥미롭지만 어렵다. 이를 풀어 본다. 같은 뉴스에 주가의 반응은 다르다 나는 어떤 제약회사의 몇 건의 기술수출에 반응해 오르는 주가를 보았다. 나는 단발성이고 성공의 불확실성이 너무 커 반응하지 않았는데 수출이 이어지며 포모로 탑승한다. 하지만 선반영의 덫에 걸렸다. 이후에 다른 제약에서 사용 중인 정맥주사(IV) 의약품을 피하주사(SC) 제형으로 전환하는 원천 플랫폼 기술을 대형제약사의 만기가 얼마 남지 않은 블록버스터급의 제품에 적용하기 위한 뉴스였다. 나는 바로 반응했다. 하지만 하락하다 결국은 상승했다. 이 둘의 차이는 하나는 몇 건의 수출이 이어지며 그 기대에 한껏 가치로 반영된 상태에서 나는 확인을 거듭하다 늦게 진짜인가 봐 하며 뒷북을 친 것이다. 선반영된 것이다. 하나는 기술 파급력에 의한 가치의 향상 정도에 대한 해석의 차이다. 누군가는 다 선반영되었다고 팔고 나는 엄청난 제품에 제형 전환의 사업 확장 가능성에 주목해 실패 가능성을 작게 보았고 매출에 연동된 로열티도 오늘의 가격 이상으로 기업가치를 높일 것으로 보았다. 다만 제형 전환이 특허 연장이나 사업 성공을 자동으로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승인과 계약, 경쟁 조건은 따로 확인해야 한다. 내가 아침 뉴스를 읽을 때 이미 기대가 가격에 들어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모든 정보가 즉시 완벽하게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사실을 두고도 사람들의 해석과 ...

가격과 패턴과 마음을 함께 보는 이유

이미지
주식은 어렵다. 여기저기 이런저런 방법으로 투자에 유용한 힌트를 찾는다. 주식에도 변하지 않은 본질이 있고 이에 따라 만들어진 가격은 때론 정형화된 패턴을 그린다. 이런 패턴은 심리가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런 심리의 역이용은 투자자에게 작은 빛이다. 나는 이 힌트가 투자에 적용할 최고의 수단 중 하나라고 본다. 궁금하지 않은가? 가치는 기준이지만 가격은 멀리 갈 수 있다 가격은 가치에 수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 사이에는 확산이 있다. 크고 작은 사이클이 혼재하며 반복한다. 유동성과 실적, 심리가 가격을 가치에서 멀어지게도 하고 가깝게도 한다. 단기에는 가격으로 투표하고 장기에는 저울질하는 가치로 온다. 수렴과 확산을 반복한다. 이는 심리가 작동한 결과다. 확산이 커질 때 가격이 가치를 크게 위로 벗어난다. 한편으로는 가격이 가치를 크게 하회할 수도 있다. 주인과 개가 산책하는 모습과 비슷하다. 주인은 정해진 대로 가는데 개는 앞뒤로 움직이거나 같은 위치에 있기도 하다. 가치라는 저울을 얻는다. 평가의 잣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2020년 테슬라의 첫 대상승기에는 새로운 모델과 자율주행 개발이라는 서사에 실적이 함께 찍혔다. 그 대상승이 끝난 뒤인 2021년 말에는 머스크의 지분 매각 소식이 가격을 흔들었다. 지분 매각과 수급에 대한 우려는 기업이 버는 힘과는 다른 이야기다. 그럼에도 가격은 급하게 움직였다. 그렇다고 가격의 급등락을 어느 한 뉴스만의 결과로 단정할 수는 없다. 가치라는 잣대 아래 움직이는 가격을 보며 이 둘의 차이를 그려 보는 것이다. 모든 종목에서 반드시 실현되는 법칙은 아니다. 기업가치 자체가 변하거나 재평가받기 전에 기업이 쇠퇴할 수 있다. PER이 높아도 현금이 늘고 기대와 현실의 간극이 줄어드는 중인지 본다. 싸다는 이유만으로 약한 기업을 사면 원리에 따른 것이 아니라 기분에 속은 것이다. 유동성은 같은 실적도 돈이 풀리면 비싸지고 마르면 싸진다. 시간은 복리가 눈에 안 보여 늘 과소평가된다. 인간 본성은 상품이...

안개 속의 자본, 그리고 쏠림의 본질

이미지
한 줄: 지금 쏠림은 대박을 노린 탐욕의 분산이 아니라, 고금리를 견디는 곳으로의 방어적 집중이다. 그러나 그 집중이 내일도 정당하다고 단정하지는 않는다. 요즘 장은 변동성도 크고 쏠림이 심하다. 어렵다. 쉬고 싶다. 그럼에도 계좌를 전부 비우지는 못했다. 내일은 내일의 논리로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안개가 짙다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2026년 10월 22일 기준 4.96%였다. 높은 국채 수익률 앞에서도 자본은 주식시장의 일부 기업으로 모인다. 지수가 강하다고 모든 기업이 함께 강한 것은 아니다. 나는 소수 기업에 자본이 집중되는 풍경에서 조바심을 느낀다. 이 파도를 자본의 생존 본능과 인간의 무명이 맞물린 모습으로 읽어 본다. 현재 시장을 짓누르는 조건은 세 가지다. 국채 금리와 부채 폭주, AI 설비투자와 실적의 충돌, 지수 착시다. 금리가 높으니 주식은 끝났다는 공포와, AI는 무조건 가니 추격해야 한다는 탐욕이 매일 부딪힌다. 그러나 금리와 실적 숫자는 현재 판이 놓인 현위치일 뿐이다. 왜 쏠림이 일어나는가 과거 네 번의 큰 쏠림을 비교하면 지금이 드러난다. 1970년대 니프티 피프티, 2000년대 닷컴, 2010년대 FAANG, 현재의 Mag 7이다. 니프티 피프티는 코카콜라, 디즈니 등 50개 초우량주를 원하는 만큼 영원히 보유해도 되는 주식으로 인식되며, 닷컴 버블은 새로운 기술에 대한 기대에, FAANG은 스마트폰 생태계와 클라우드 컴퓨팅 혁신을 주도한 소수의 모바일·플랫폼 공룡들에 성장 기대와 자본이 집중되던 시기였다. 오늘의 집중에도 성장에 대한 기대와 5% 내외의 고금리를 버티고 현금을 잘 버는 기업을 선호하는 심리가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를 방어적 집중의 한 모습으로 본다. 많은 사내유보금을 보유하고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채권을 발행하는 빅테크와 이자 비용이 부담스러운 중소형주의 격차는 자본의 선택에 영향을 주는 조건이다. 기술주가 위험 자산이 아니라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을 피하기 위한 주식시장 내 피난처로 ...

매매가 끝난 뒤 무엇을 남길 것인가

이미지
한 줄: 일지는 수익 장부가 아니다. 규칙을 지켰는지를 확인하는 장부다. 장부에 남은 숫자보다, 그 숫자를 만든 내 손을 보는 것이 먼저다. 수익률보다 반복되는 손을 본다. 주식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장이 끝나면 계좌부터 열어 보지만, 정작 들여다볼 것은 그날 내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규칙을 따랐는가이다. 결과만 적으면 잘못된 손을 배운다 매매가 끝나면 결과가 남는다. 몇 퍼센트를 벌었는가, 몇 퍼센트를 잃었는가 하는 숫자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고, 사람은 그 숫자로 그날의 매매에 점수를 매기게 된다. 기억에만 맡겨 두면 이긴 날은 또렷하고 진 날은 슬그머니 흐려진다. 수익률만 기록하면 중요한 것이 사라진다. 좋은 판단을 했는데도 시장이 받아주지 않아 손실이 날 수 있고, 나쁜 판단을 했는데 우연히 수익이 날 수도 있다. 그런데 장부에 숫자만 적어 놓으면 두 번째가 더 좋아 보인다. 잘한 매매는 손실이라 지워지고, 못한 매매는 수익이라 남기 때문이다. 그러다 잘못된 행동을 학습한다. 한 번의 수익은 그 판단이 언제나 옳았다는 증거가 아니다. 한 번의 손실도 그 판단이 모두 틀렸다는 증거는 아니다. 시장에서는 맞는 이유로 틀리기도 하고, 틀린 이유로 맞기도 한다. 수익이 났다고 그 방법을 되풀이하다가 한 번에 크게 잃는 일이 그래서 생긴다. 결과와 과정을 떼어 보지 않으면 우연을 실력으로 배우고, 지켜야 할 규칙을 버릴 수 있다. 일지에 남길 다섯 줄 일지에 남길 것은 다섯이다. 거창한 양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고, 매매한 날 종목마다 다섯 줄이면 된다. 왜 샀는가. 왜 그날 샀는가. 왜 그만큼 샀는가. 산 이유 가운데 무엇이 깨지면 줄이거나 나올 것인가. 그 규칙을 지켰는가, 어겼는가. 다섯 줄을 쓰다 보면 답이 막히는 줄이 생기는데, 그 막힌 줄이 바로 내가 준비하지 못하고 들어간 자리다. 여기에 마음도 한 줄 덧붙이면 된다. 급했는가, 놓칠까 두려웠는가, 손실을 인정하기 싫었는가, 남들이 사서 샀는가, 내가 맞다는 것을 증명...

확신할수록 얼마나 사야 하는가

이미지
한 줄: 비중은 확신의 크기가 아니다. 기회가 커 보여도 미리 정한 총한도 안에서 사고, 비중이 커질수록 출구는 더 분명히 정한다. 확신이 커도 총한도와 출구를 먼저 적는다. 확신과 비중은 같은 것이 아니다 좋은 종목을 찾고 가격도 감당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얼마를 살 것인가. 확신이 강할수록 많이 사고 싶어진다. 많이 공부했으니 더 확신한다. 남보다 잘 안다고 생각하면 비중도 커진다. 어느 순간 기업에 대한 확신이 내 판단에 대한 확신으로 바뀐다. 둘은 같은 것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기업도 미래는 모른다. 기술이 바뀌고, 경쟁자가 나타나고, 금리와 경기가 변한다. 기업은 그대로인데 시장이 지불하려는 가격이 달라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 내가 틀릴 수 있다. 확신은 마음속의 느낌이고, 비중은 계좌에 찍히는 숫자다. 느낌은 하루에도 몇 번씩 커졌다 작아졌다 하지만 숫자는 그대로 남는다. 그래서 비중은 느낌이 아니라 미리 정한 숫자로 다룬다. 잘 안다는 것과 앞일을 안다는 것도 다르다. 기업을 깊이 아는 사람도 다음 분기 주가는 모른다. 큰 기회와 살아남을 한도 비중에는 딜레마가 있다. 적게 실으면 틀렸을 때의 상처는 작지만 어렵게 찾은 자리에서도 얻는 것이 작다. 크게 실으면 맞았을 때의 보상은 커지지만 불확실성도 계좌에 함께 실린다. 큰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늘이 준 기회’라고 단정하고 몰아넣을 수는 없다. 그 단정 자체가 틀릴 수 있기 때문이다. 비중의 핵심은 확신의 크기 하나가 아니다. 종목의 질, 사이클의 위치, 가격,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시간과 손실을 함께 본다. 여러 조건이 겹치고 변화의 초입이라고 판단되면 평소보다 비중을 늘릴 수 있다. 그래도 사전에 정한 종목별·계좌별 총한도는 넘지 않는다. 심리만 앞서 있거나, 주도주라도 내가 견디지 못한다면 비중을 늘리지 않는다. 얼마를 실을지를 숫자로 따져 본 사람도 있다. 1956년 벨 연구소의 존 켈리가 내놓은 켈리 공식이다. 이길 확률과, 이겼을 때 얻는 ...

시장의 주도주와 나의 주도주는 같은가

이미지
겹치지 않으면 좋은 종목도 시장에 남겨 둔다. 나는 추세추종과 모멘텀 투자를 좋아한다. 빠르게 움직이는 주식에 마음이 간다. 그런데 또 다른 나는 시대정신과 미래 먹거리와 관련된 종목을 고집한다. 짧은 흐름을 타려는 나와 긴 미래를 믿는 나. 두 생각을 합친 투자 방식이 합리적이라고 여겼다. 문제는 시장의 주도주와 내가 믿는 주도주가 달라질 때였다. 시장은 다른 곳으로 가는데 나는 한 종목을 붙들고 있었다. 긴 조정의 시간을 견디는 일이 투자 철학인지, 고집인지조차 구별하기 어려웠다. 시장의 주도주가 곧 나의 주도주일까? 시장 주도주와 함께했던 때 2024년에는 한국 시장의 여러 산업에서 대표 종목을 골라 매매 후보군을 만들었다. HD현대일렉트릭, 알테오젠, 한화오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두산에너빌리티 등이었다. 전력기기, 바이오, 조선, 방산, 원전이라는 서로 다른 산업이었지만 시장의 관심과 성장 기대가 모인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내 방식은 처음부터 많은 돈을 넣는 것이 아니었다. 20% 내외 조정을 받으면 소액으로 진입하고, 상승 흐름이 확인되면 비중을 늘리고 5일선을 이탈하거나 평상시보다 많이 빠지면 분할하여 매도했다. 여러 종목이 함께 움직일 때에는 상대적으로 강한 종목에 더 관심을 두었다. 그럼에도 이 시기에는 내가 고른 후보와 시장이 선택한 종목이 상당 부분 겹쳤다. 내가 생각한 좋은 기업과 시장이 값을 높여 주는 기업이 같은 방향을 바라본 셈이다. 주도주를 가지고도 수익을 놓쳤다 닷컴버블 시절에도 시장의 중심에 있는 종목들을 보았다. 그런데 나는 짧게 사고팔면 수익이 불어날 것으로 보았다. 시장의 주도주를 알고 있다는 것과 그 상승을 내 수익으로 가져오는 것은 달랐다. 이후에도 시장 중심주의 레버리지 상품을 거래하며 비슷한 경험을 했다. 큰 흐름을 보면서도 작은 등락에 마음을 빼앗겼다. 주도주를 매매했지만 내가 감당 못 할 매매 방식으로 수익을 내지 못했다. 시장의 주도주를 벗어났다 나는 반도체를 경기민감 산업으로 본다. 실적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