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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장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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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지식은 빌려도 판단까지 빌릴 수는 없다. 감정에 흔들리는 나와 자등명·법등명 주식을 하며 ‘내 판단을 믿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이 말도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흔들리고 욕심내고 두려워하는 지금의 나를 무조건 믿는다면 그것은 주체성이 아니라 또 다른 고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이 시장을 배워야 한다 남의 말을 듣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기업도 공부해야 하고 시장도 공부해야 한다. 나보다 많이 아는 사람의 지식도 빌려야 한다. 하지만 남의 지식을 빌리는 것과 남의 판단으로 내 돈을 투자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남의 지식을 빌릴 수는 있어도 남의 판단으로 내 돈을 투자할 수 없다. 자등명과 법등명을 투자에서 생각해 본다 나는 불교의 자등명·법등명이라는 말을 투자자의 자세를 돌아보는 데 빌려본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되, 자기 확신에 갇히지 않고 사실과 원칙이라는 등불도 함께 보자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마지막 판단을 남에게 떠넘기지 않는 것.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투자 주체성에 가깝다. 여실지견은 목표가 아니라 방향이다 감정에 휘둘리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기 어렵다. 내가 원하는 것, 두려워하는 것, 이미 가진 것에 따라 같은 사실도 다르게 보인다. 여실지견.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알려는 것. 나는 이것을 주식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로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시장을 완벽하게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그쪽으로 가려 한다. 제대로 보려는 나 주식은 마음공부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기업이 있고 돈이 있고 가격이 있다. 그래서 더 공부해야 한다. 다만 그 모든 자료를 해석하는 마지막 자리에 내가 있다. 나는 지금 사실을 보고 있는가. 남의 확신을 빌려 내 불안을 덮고 있는가.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지는 않은가. 자등명이 자기 확신이 되어서는 안 된다. 법등명이 남의 규칙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일이 되어서...

사고 싶은 마음은 언제 매수 버튼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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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싶다와 사야 한다 사이에는 틈이 필요하다. 수(受)·애(愛)·취(取)로 들여다본 뇌동매매 처음에는 살 생각이 없었다. 그냥 지켜보았다. 그런데 주가가 오른다. 하루 더 오른다. 주변에서도 이야기가 들린다. 마음이 조금 급해진다. ‘놓치는 것 아닌가.’ 그때부터 이상하게 좋은 이유가 더 많이 보인다. 결국 손이 매수 버튼으로 간다. 감정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불교의 수·애·취라는 말을 보며 내 매매를 떠올린 적이 있다. 이것을 투자 공식으로 쓰려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행동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들여다보는 렌즈로 빌려보는 것이다. 수(受)는 주가 움직임을 '사실'이 아니라 ' 내 기분'으로 느끼고 애(愛)는 오를 때 더 갖고 싶고 떨어질 때 버리고 싶어하며 취(取)는 고점에 사고 저점에 파는 마음이 ‘사야 한다’는 확신으로 굳어진다.  수가 왜곡되고 애가 강화되고 취가 반복된다. 사고 싶다는 것과 사야 한다는 것은 다르다 문제는 감정이 생기는 데 있지 않다. 나도 좋은 종목을 보면 사고 싶다. 문제는 그 사이의 틈이 사라질 때다. 사고 싶다. 그래서 산다. 이 두 문장 사이에 기업, 가격, 위험, 제때에 대한 질문이 빠져버린다. 사고 싶다는 것은 감정의 사실이다. 사야 한다는 것은 투자 판단이다. 둘은 다르다. 매매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행동이다 예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기회를 놓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기다림도 선택이다. 조건이 충분하지 않으면 사지 않는다. 감정이 너무 커졌다면 하루 더 본다. 내가 왜 사고 싶은지 적어본다. 매매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행동이다. 이 ‘틈’이 내게는 중요해졌다. 감정자유는 아직이다 오래 투자했다고 탐욕과 공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감정자유는 아직이다. 그래서 이제는 감정을 적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는 함께할 놈이다. 다만 동반자와 운전자는 다르다. 감정은 함께 갈 수 있지만 운전대를 잡게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기보다 마...

아는 것이 고집이 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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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생각을 고치는 것도 투자다. 시장과 내 생각의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주식을 오래 하다 보면 아는 것이 늘어난다. 기업을 보는 눈도 조금씩 생기고, 산업의 흐름도 예전보다는 빨리 알아차린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상한 문제가 생겼다.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내가 공부한 기업, 오래 지켜본 산업, 나름대로 확신을 가진 미래. 주가가 내 생각과 다르게 움직이면 처음에는 시장을 다시 보지만, 어느 순간부터 시장보다 내 지식을 지키려 한다. 지식과 확신은 다르다 지식은 판단의 재료다. 그러나 지식이 확신으로 굳는 순간 새로운 사실이 들어올 자리가 좁아진다. 좋은 기업이라는 판단이 맞더라도 좋은 주식이라는 판단까지 자동으로 맞는 것은 아니다. 좋은 주식이라 해도 내가 산 가격과 시기가 적절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좋은 기업 ≠ 좋은 주식 ≠ 좋은 가격과 제때. 이 구분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돈이 들어가면 자꾸 하나로 묶는다. 모순은 판결이 아니라 질문이다 내 생각과 시장이 다를 때 나는 예전에는 둘 중 하나가 틀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모순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되었다. 기업은 성장하는데 주가는 너무 앞서갈 수 있다. 기업은 아직 좋아 보이는데 산업의 경쟁 조건이 달라질 수도 있다. 반대로 시장의 공포가 기업의 변화보다 먼저 가격을 흔들 수도 있다. 모순이 나타났다는 것은 곧바로 내 생각이 틀렸다는 판결도, 시장이 틀렸다는 판결도 아니다. 다시 보라는 질문이다. 정반합에서 내가 배운 것은 지양이다 헤겔의 변증법을 주가 상승·하락 공식으로 가져오고 싶지는 않다.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은 모순이 드러났을 때 이전의 생각을 통째로 버리거나 끝까지 고집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라는 점이다. 내 판단 가운데 여전히 맞는 것은 남기고, 틀린 것은 고치고, 새로 나타난 조건을 받아들인다. 나는 이것을 투자에서의 ‘지양’으로 이해해 보았다. 기업을 좋게 본 판단은 남길 수 있다. 그러나 가격에 대한 판단은 고쳐야 할 ...

내가 산 주식만 변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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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도 기업도 변한다. 그렇다면 내 생각은? 시장은 변하는데, 내 생각은 왜 굳어지는가 주식을 사고 나면 이상한 일이 생긴다. 사기 전에는 이것저것 의심한다. 실적은 괜찮은가. 가격은 비싸지 않은가. 경쟁자는 없는가. 앞으로도 성장할 수 있는가. 그런데 사고 나면 조금 달라진다. 좋은 이유가 더 잘 보인다. 나쁜 뉴스에는 반론이 먼저 떠오른다. 주가가 떨어지면 기업이 변했는지를 보기 전에 “시장이 너무 심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부터 든다. 나도 그랬다. 나는 기업에 투자한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내 생각에 투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주식을 사는 순간 내 생각도 함께 산다 기업은 계속 변한다. 산업도 변하고 경쟁자도 변한다. 금리도 바뀌고 돈의 흐름도 달라진다. 소비자의 선택도 달라지고 새로운 기술도 나타난다. 그런데 내가 한번 내린 판단만 그대로 남아 있을 때가 있다. 특히 돈이 들어간 뒤에는 더 어렵다. 주식을 산다는 것은 기업의 지분을 사는 일이지만, 심리적으로는 내가 내린 판단에도 돈을 거는 일이 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기업에 대한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단순히 분석 하나를 수정하는 일로 끝나지 않는다. ‘내가 틀렸다’는 느낌이 따라온다. 그때부터 기업을 지키는 것인지 내 생각을 지키는 것인지 경계가 흐려진다. 내 매수가격은 기업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 내가 산 가격도 머릿속에 오래 남는다. 그 가격 아래로 내려가면 손해를 보고 있는 것 같고, 다시 그 가격까지 올라와야 무언가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다. 하지만 시장은 내가 얼마에 샀는지 모른다. 기업도 모른다. 내 계좌의 손익은 나에게 매우 중요하지만 기업의 미래가치를 결정하는 조건은 아니다. 알면서도 어렵다. 주가가 매수가격 근처에 오면 마음이 달라진다. 본전만 오면 팔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왜 내가 산 가격이 미래의 매도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하는가. 그 가격은 시장의 기준이 아니라 나의 과거일 뿐이다. 기업보다 내 판단을 보유할 때...

오늘 시장을 옛 성현에게 물어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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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을 찾기 전에, 나는 제대로 질문하고 있는가. 주식의 답을 찾다가, 질문하는 법을 다시 생각하다 주식을 한 지 30년이 넘었다. 그동안 참 많이도 물었다. 왜 오르는가. 왜 떨어지는가. 지금 사야 하는가. 조금 더 기다려야 하는가. 기업 실적을 보고 차트를 보고 수급을 보고, 금리와 환율도 들여다봤다. 새로운 산업이 나타나면 또 공부했다. 그런데 오래 했다고 질문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요즘에는 다른 질문 하나가 자꾸 따라붙는다. 나는 지금 시장을 공부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보고 싶은 시장을 공부하고 있는가. 주식을 오래 공부하면 시장이 더 잘 보일까 처음에는 많이 알면 투자도 쉬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업을 더 공부하고 경제를 더 공부하면 실수를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공부는 필요하다. 문제는 지식이 늘어난다고 반드시 내가 객관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었다. 좋은 기업이라고 생각하면 좋은 자료가 더 눈에 들어온다. 이미 주식을 사고 나면 그 기업을 좋게 설명하는 이야기에 마음이 간다. 주가가 오르면 내 판단이 옳았던 것 같고, 떨어지면 시장이 아직 알아주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시장과 나를 구분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둘이 섞여 있었다. 그래서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다. 옛 성현들에게 오늘 주식시장을 물어본다면 뭐라고 할까. 철학자에게 주가를 묻는다는 것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묻는다면 기업 이름이나 오늘 주가보다 먼저 그것이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물어보지 않을까. 헤겔에게 묻는다면 지금 오르느냐 내리느냐보다 그 안에서 무엇이 충돌하고 무엇이 변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라고 하지 않을까. 장자에게 묻는다면 시장을 내 뜻대로 움직이게 하려는 나부터 한번 돌아보라고 하지 않을까. 물론 이분들이 주식투자를 가르쳤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그저 오래된 사람들의 생각을 잠시 빌려 내 질문을 다시 해보는 것이다. 철학에서 주가의 답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너무 쉽게 답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를 돌아보려는 것이다....

감정의 휘둘림에서 벗어나는 주식투자 본질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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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풍 속 등대 — 흔들리는 가격 속에서도 본질은 방향을 비춘다 주가가 변했다고 그 기업의 본질까지 변한 것인가. 시장은 수많은 힘이 맞물리는 복잡계다. 투자자의 미묘한 감정부터 금리와 전쟁, 기업의 실적과 돈의 흐름까지 서로 얽혀 가격을 만든다. 오늘의 가격에는 사실과 기대, 공포와 탐욕이 한꺼번에 섞여 있다. 그러니 가격이 크게 움직일수록 마음도 같이 출렁인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예측이 아니라 무엇이 변했고 무엇이 아직 변하지 않았는지를 가려 보는 일이다. 나도 가격이 오르면 좋은 기업처럼 보이고, 떨어지면 처음부터 잘못 산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느낌이 바뀌었다고 기업까지 같은 속도로 바뀐 것은 아니다.

시세 삼각형을 차트에 대입하면 무엇이 보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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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트 위에서 읽는 시세삼각형의 불균형 차트는 가격의 궤적만 보여 준다. 시세삼각형은 그 궤적 뒤에서 어느 변이 길어지고 짧아졌는지를 읽는다. 유동성, 종목 실적, 투자자 심리. 세 변이 고르면 면적이 커지고, 한 변이 무너지면 가격은 그 짧은 변에 묶인다. 숫자 공식 없이, 실제 국면의 차트가 말한 것을 삼각형으로만 정리한다.

복잡계 시장과 시세삼각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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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세삼각형: 실적·심리·유동성 서론, 복잡계 주식 시장을 읽는 단순한 이미지 주식시장은 금리, 실적, 환율, 뉴스, 군중의 감정 등 수많은 요인이 동시에 얽힌 복잡계다. 시간상으로는 정보와 소음도 매매도 더욱 빨라지고 있다. 더 많은 정보가 오히려 분석과 판단을 어렵게 하고 흐리게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단순한 이미지화가 필요했고 그 방편으로 농업의 수량삼각형과 최소율을 사용할 것이다. 복잡계를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복잡계 앞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는 선택입니다.

내가 만든 파도에 갇혀 비명을 지르는 우리, 주식투자의 지독한 이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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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성 — 탐욕과 공포로 갈라진 나 "대체 왜 이렇게 시장이 미쳐 날뛰는 거야?" 화면 속 붉고 푸른 숫자가 잔인하게 널뛰는 날이면, 투자자들은 가슴을 졸이며 시장의 극심한 변동성을 탓합니다. 하지만 이는 우리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이고 그 결과도 우리에 귀속됩니다. 모두가 똑같이 적정한 가격이라 믿는 고요한 시장에서는 거래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지금이 바닥이라며 탐욕스럽게 매수하고, 누군가는 지금이 끝이라며 공포에 질려 던질 때 비로소 시세와 거래량이 태어납니다. 주식판을 움직이는 거대한 폭풍은 외부에 존재하는 괴물이 아니라, 소음과 욕망에 흔들려 매수·매도 버튼을 누르는 우리 자신들의 합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