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이 고집이 되는 순간
| 틀린 생각을 고치는 것도 투자다. |
시장과 내 생각의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주식을 오래 하다 보면 아는 것이 늘어난다. 기업을 보는 눈도 조금씩 생기고, 산업의 흐름도 예전보다는 빨리 알아차린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상한 문제가 생겼다.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내가 공부한 기업, 오래 지켜본 산업, 나름대로 확신을 가진 미래. 주가가 내 생각과 다르게 움직이면 처음에는 시장을 다시 보지만, 어느 순간부터 시장보다 내 지식을 지키려 한다.
지식과 확신은 다르다
지식은 판단의 재료다. 그러나 지식이 확신으로 굳는 순간 새로운 사실이 들어올 자리가 좁아진다. 좋은 기업이라는 판단이 맞더라도 좋은 주식이라는 판단까지 자동으로 맞는 것은 아니다. 좋은 주식이라 해도 내가 산 가격과 시기가 적절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좋은 기업 ≠ 좋은 주식 ≠ 좋은 가격과 제때.
이 구분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돈이 들어가면 자꾸 하나로 묶는다.
모순은 판결이 아니라 질문이다
내 생각과 시장이 다를 때 나는 예전에는 둘 중 하나가 틀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모순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되었다.
기업은 성장하는데 주가는 너무 앞서갈 수 있다. 기업은 아직 좋아 보이는데 산업의 경쟁 조건이 달라질 수도 있다. 반대로 시장의 공포가 기업의 변화보다 먼저 가격을 흔들 수도 있다.
모순이 나타났다는 것은 곧바로 내 생각이 틀렸다는 판결도, 시장이 틀렸다는 판결도 아니다. 다시 보라는 질문이다.
정반합에서 내가 배운 것은 지양이다
헤겔의 변증법을 주가 상승·하락 공식으로 가져오고 싶지는 않다.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은 모순이 드러났을 때 이전의 생각을 통째로 버리거나 끝까지 고집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라는 점이다.
내 판단 가운데 여전히 맞는 것은 남기고, 틀린 것은 고치고, 새로 나타난 조건을 받아들인다. 나는 이것을 투자에서의 ‘지양’으로 이해해 보았다.
기업을 좋게 본 판단은 남길 수 있다. 그러나 가격에 대한 판단은 고쳐야 할 수도 있다. 산업의 장기 방향은 맞더라도 내가 생각한 속도는 틀릴 수 있다.
나는 자료를 보는가, 내 생각을 증명하는가
그래서 자료를 볼 때 한 가지를 묻는다.
나는 지금 이 자료로 기업을 보고 있는가.
아니면 내 생각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불편하다. 그러나 투자에서 발전이라는 것이 한 번도 틀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면 나는 이미 실패했을 것이다.
요즘에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틀린 생각을 고치는 것도 투자다.
지식이 고집으로 변하는 징후
지식이 고집으로 변하는 순간에는 몇 가지 징후가 있다. 반대되는 의견을 들으면 내용보다 말한 사람부터 판단하고, 새 자료가 나오면 내 생각에 맞는 부분만 골라 읽는다. 주가가 오르면 분석이 맞았다고 믿고, 내리면 시장이 몰라준다고 여긴다. 처음에는 근거를 가지고 시작했지만 어느새 결론을 지키는 일이 목적이 된다.
투자 공부가 깊어질수록 이런 위험은 줄어들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아는 것이 많으면 설명할 말도 많아지고, 이미 내린 판단을 방어할 논리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지식의 양만이 아니라 지식을 다루는 태도다. 아는 것을 근거로 삼되, 그것이 새로운 사실을 막는 벽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
기업·가격·기대를 나누어 본다
나는 기업과 주가를 볼 때 판단을 몇 갈래로 나누어 보려 한다. 기업의 사업은 여전히 좋은가. 재무와 경쟁 조건은 달라졌는가. 시장이 기대하는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현재 가격은 그 기대를 얼마나 반영했는가. 이 질문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같은 답을 내놓지는 않는다. 기업이 좋아졌어도 가격이 더 빠르게 올랐다면 투자 매력은 줄 수 있고, 단기 주가가 약해도 기업의 장기 조건은 유지될 수 있다.
생각을 고칠 기준을 미리 정한다
생각을 고칠 기준도 미리 정해 두어야 한다. 매수 뒤에 기준을 만들면 손익에 따라 기준이 달라지기 쉽다. 어떤 사실이 확인되면 판단을 다시 볼 것인지, 무엇이 변하면 처음의 가설이 무너지는지 기록해 둔다. 반대로 주가가 흔들렸다는 이유만으로 기업에 대한 판단까지 곧바로 버리지 않도록, 가격의 변화와 본질의 변화를 나누어 본다.
반대 의견을 거울로 삼는다
다른 사람의 의견은 내 판단을 이기거나 지는 상대가 아니다. 내가 놓친 조건을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다.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 의견이 어떤 사실에서 출발했는지 살펴보면 내 분석의 빈틈을 발견할 수 있다. 끝까지 생각이 다르더라도 이유를 확인한 뒤의 판단은 처음의 확신과는 다르다. 반대를 통과한 판단은 근거가 더 분명해지거나, 고쳐야 할 곳을 드러낸다.
틀렸을 때 더 빨리 고치는 투자자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은 손실을 인정하는 일보다 더 어려울 때가 있다. 돈의 손실뿐 아니라 내가 안다고 믿었던 마음도 함께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은 내 자존심을 지켜주는 곳이 아니다. 맞았던 기억을 붙드는 것보다 지금의 사실에 맞추어 생각을 바꾸는 편이 오래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된다.
정반합이나 지양이라는 말을 빌린 이유도 거창한 이론으로 시장을 설명하려는 데 있지 않다. 내 생각과 현실이 부딪힐 때 어느 한쪽을 성급히 판결하지 않고,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고칠지 살피려는 것이다. 투자는 한 번 옳은 답을 얻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기업도 시장도 나 자신도 변한다. 그래서 판단도 계속 점검되어야 한다.
아는 것은 출발점이다. 그러나 아는 것이 결론을 닫아버리면 더 이상 배울 수 없다. 나는 확신이 생길수록 그 확신을 지지하는 자료뿐 아니라 흔드는 자료도 보려 한다. 틀리지 않는 투자자가 되기보다, 틀렸을 때 더 빨리 알아차리고 제대로 고치는 투자자가 되는 것. 그것이 지식이 고집이 되지 않도록 내가 붙들고 싶은 태도다.
자주 묻는 질문
시장과 내 생각이 다르면 바로 판단을 바꿔야 하나요?
아니다. 차이가 생긴 이유를 다시 확인하는 것이 먼저다. 기업·산업·가격·기대 가운데 무엇이 변했는지를 살펴야 한다.
정반합으로 주가를 예측할 수 있나요?
이 글에서는 예측 공식이 아니라 모순과 변화의 방향을 살펴보는 사고의 렌즈로 사용한다.
투자에서 지양이란 무엇인가요?
기존 판단을 전부 버리거나 고집하지 않고, 유효한 부분은 남기고 잘못된 부분은 수정하며 새로운 조건을 받아들이는 태도로 이해한다.
다음 글 안내
다음 8편에서는 남의 지식을 배우면서도 판단까지 맡기지 않는 태도, 그리고 시장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투자자의 연습을 이어갑니다.
※ 이 글은 개인적인 투자 경험과 생각을 정리한 글이며 특정 종목이나 금융상품의 매수·매도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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