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공부해도 틀릴 수 있다

두꺼운 노트 옆에 빈 칸 하나가 남겨진 책상
확신 옆에 빈자리 하나를 둔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

▶ 짧은 영상 — 아무리 공부해도 틀릴 수 있다


투자의 마지막 문제는 예측보다 불확실성을 견디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기업을 오래 들여다보면 조금은 알 것 같은 마음이 생깁니다. 산업을 보고 실적을 읽고 경쟁우위와 가격까지 따지면 처음보다 판단의 근거도 많아집니다.

그때 조심해야 할 마음이 하나 있습니다. 이만큼 공부했으니 맞아야 한다는 마음입니다.

정보가 많아지는 것과 미래가 확실해지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공부를 많이 할수록 내가 세운 논리를 뒷받침하는 자료만 더 잘 보일 수 있습니다.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려면 그동안 들인 시간과 노력을 함께 부정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편의 병명은 ‘확신 과다’입니다. 무지에서 생기는 병이 아니라 공부와 성실함 뒤에서도 생길 수 있다는 점이 더 어렵습니다.

공부해도 불확실성은 남는다

미래에는 내가 모르는 변수가 생깁니다. 경쟁자가 예상보다 빨리 따라올 수 있고 기술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경기와 금리, 공급망과 제도도 변합니다. 경영진의 판단이 틀릴 수 있고 공개된 정보를 내가 잘못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기업은 혼자 존재하지 않습니다. 고객과 경쟁자, 자본과 정책, 기술과 사람의 심리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하나의 원인만 붙잡고 미래를 단정하기 어려운 까닭입니다.

공부의 목적을 미래를 맞히는 데만 두면 틀렸을 때 공부 전체가 무너집니다.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구분하고, 생각과 다른 일이 벌어졌을 때 어디를 다시 볼지 정하는 일이라면 공부는 여전히 쓸모가 있습니다.

공부는 불확실성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불확실성의 모양을 조금 더 알아보는 일인지 모릅니다.

격물치지가 고집으로 변할 때

발굴한 종목을 계속 공부하는 까닭은 처음 매수한 명분이 유지되고 진전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공부한 내용이 언제나 나를 밝히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믿고 싶은 자료만 거듭 받아들이면 그것도 하나의 습관이 됩니다. 과거의 판단을 지키는 공부라면, 격물치지는 어느 순간 고집이 됩니다.

공부는 처음의 생각을 지키기 위한 성벽이 아니라, 그 생각이 아직 현실과 맞는지 비추어 보는 등불이어야 합니다.

비중은 확신과 생존을 함께 담는다

아무리 좋은 종목이라도 하나의 판단에 모든 것을 걸면 틀렸을 때 다시 생각할 기회가 줄어듭니다. 반대로 아무 이유 없이 지나치게 흩어 놓으면 내가 무엇을 왜 가지고 있는지도 흐려집니다.

비중은 확신의 크기만 표시하는 숫자가 아닙니다. 내가 틀릴 가능성과 그때 감당할 손실, 다시 판단할 수 있는 여지를 함께 담습니다.

‘좋은 기업이니 많이 산다’보다 먼저 묻습니다. 내 판단이 틀리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그 손실이 자본과 생활과 마음을 얼마나 흔드는가. 흔들리는 동안 새로운 사실을 볼 수 있는가, 아니면 가장 나쁜 순간에 결정을 바꾸게 되는가.

집중과 분산, 추가 매수와 손절의 구체적인 기법은 3부에서 따로 다룹니다. 여기에서는 어느 방식이 옳다고 결론 내리지 않습니다. 다만 한 번의 오류가 전체 판단을 끝내 버리지 않도록, 다시 생각할 여지는 남겨 두어야 합니다.

하나의 미래보다 여러 갈래를 본다

한 가지 미래만 믿으면 그 미래가 어긋나는 순간 대처할 길이 사라집니다. 잘될 경우, 평범할 경우, 기대보다 나쁠 경우를 함께 놓아 봅니다. 어느 경우가 올지를 맞히려는 것이 아닙니다. 예상 밖의 일이 생겨도 내 자본과 마음이 견딜 수 있는지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숫자가 정교하다고 미래까지 정교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조건이 달라지면 좋은 시나리오가 평범한 시나리오로 넘어가는지를 아는 편이 더 중요합니다. 고객의 수요인가. 경쟁사의 추격인가. 비용과 이익률인가. 자본배분인가. 시장의 기대와 가격인가.

경계가 되는 조건을 알고 있으면 새로운 사실이 들어왔을 때 처음의 생각을 다시 살필 수 있습니다.

오늘 할 일

  • 한 가지 미래에 전부 걸지 않습니다.
  • 이 판단이 흔들리면 다시 볼 조건 세 가지를 적습니다.
  • 비중에 다시 생각할 자리를 남깁니다.
  • 새로운 사실이 나타나면 체면보다 현실을 따릅니다.

확신이 없으면 투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확신이 너무 크면 현실이 달라져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행동할 만큼의 확신과, 생각을 바꿀 만큼의 빈자리를 함께 둡니다.

확신 옆에 빈자리 하나를 남겨 두고 싶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

그 빈자리가 있어야 새로운 사실이 들어오고, 다음 판단도 가능해집니다.

FAQ

공부를 많이 하면 확신이 생기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요?

행동은 확신이 필요합니다. 다만 공부한 만큼 맞아야 한다는 마음은 새로운 사실을 밀어냅니다.

여러 시나리오를 만들면 결정을 못 하는 것 아닌가요?

맞히려는 시나리오가 아니라, 어느 조건에서 가정이 흔들리는지를 보기 위한 시나리오입니다.

집중이 나을 때도 있지 않나요?

있습니다. 다만 그 전제는 틀렸을 때 생각을 고칠 원칙입니다. 기법의 선택은 3부에서 이어갑니다.

이 글은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앞글·다음 글 안내

← 앞글: 주도주는 왜 바뀌고, 좋아서 산 주식은 언제 놓아야 하는가
다음 글: 기업을 공부하다 다시 시장으로 돌아오다 →

※ 이 글은 촌로의 개인적인 투자 경험과 생각을 정리한 기록이며, 특정 종목이나 금융상품의 매수·매도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내가 만든 파도에 갇혀 비명을 지르는 우리, 주식투자의 지독한 이중성

오늘 시장을 옛 성현에게 물어본다면

감정의 휘둘림에서 벗어나는 주식투자 본질의 이해